이등병은 원래 어리버리한가?
원래는 아니었다.
서울대를 다녀도 어디서 공부를 잘해서 사회에서 어느정도 똘똘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이등병이 되면 바보가 된다.
필자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아마 그랬을것이다.
의외로 형님형님 하면서 생활했던 애들은 고참들도 잘 안건들고
그 친구도 힘 억제 하면서 시키는대로 잘하니까 잘 받아 주는편
그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이등병은 어리버리할 수 밖에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설령 안다해도 그 은근히 무거운 분위기
비슷한 나이지만 또 서로 엄격하게 대하던 사이들
괜히 쎄보이기 위해서 서로를 더 압박했던 그런 것들 같다.
그러니 괜한걸로 트집잡히기 일쑤였고 그런 부분들이
이등병을 주눅들게 하고 어리버리하게 만드는 요소인 것 같다.
나도 그런 이등병이었기 때문에 취사병이 되는 과정에서도 얼타면서 나의 의지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었고
어쨋든 그래저래 요리의 요짜도 할줄 모르던 내가 취사병이 되어버린거지
지금 생각 하면 다 비슷비슷한 나이 또래끼리 뭘 그렇게 죽고 못살아서 괴롭히고 혼내고 갈구고 했었는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아무리 잘해도 본전이고 조금만 실수하면 내리갈굼이니
평소 이런 상하관계를 잘 접하지 못했거나 긴장감이 많은펴이라 분위기때문에
실수를 연발하는 사람은 어쩌라고 응?
그래도 모든 선임들이 다 쓰레기는 아니었기에 그런 부조리와 악덕속에서도 군대가 굴러가지 않았을까?
내가 이등병일때 그때는 아직까지 군대에 구타가 존재했던 시절
구타의 막바지 언저리였다. 이상하게 이 촌구석에 짱박힌 군대
잘못하면 뺨도 맞고 명치도 맞고 정강이도 까였었다.
부조리했고 잘못되었지만 잘못되었다고 부조리하다고 말할 수 없던 시절
다들 그정고 갈굼이나 폭력은 쉬쉬하고 넘어가던 그런 때지
그렇다고 항상 그런건 아니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군대라는 집단은 어떻게 되었든 전쟁을 하기 위한 집단이고
최대한 나와 내 전우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명령불복종이 일어나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여기를 지키고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그 명령에 불복종 하고 마음대로 한다면
전장전체를 생각해야하는 지휘자는 어떻게 방어할 전략을 짜겠는가.
그렇기에 상하관계가 명확해야하고 그런 상하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예로부터 불필요한 폭력들이 행사되었던것
필요한 얼차려나 약간의 폭력은 혈기왕성한 남성을 제압할 수 있다. 감정이 섞이지 않아야하며 이유도 타당해야하고
뒤끝도 없어야 할 것이며 잘했을때의 보상도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당했던 일부의 폭력도 반은 내가 인정했지만 반은 내가 인정하지 못했던건 위에 말했던 것들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뒤 끝은 없었다. 생각이 없었던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감정이 시키는대로 움직이는것 같았다.
아마 그들도 이등병때 더한 선임들이 있었겠지. 그렇다고 그런 행동들이 정당화 되진 않을 것이다.
유명한 한 예로 이찬희 사건을 떠올릴 수 있을텐데 이들은 상습적으로 폭행과 가혹행위를 일삼았다
이유도 없고 감정도 억제하지 못한 짐승 그자체
시간이 있다면 유튜브에도 그 사건 현장을 본인들이 재현한 장면이 있는데 끔찍했다.
다른 사람들이 재현해주는것 같이 감정이 결핍되어 보였다.
비단 이런 것 뿐이겠는가
아마 군대 가혹행위나 폭행에 대해 검색해보면 아주 많은 자료를 접 할 수 있을것이다. 게중엔 살인 사건도 있고
자살 사건도 있고 정말 많은 썰들이 있을 것 게중엔 과장된것도 있고 축소된 것도 있고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사건들 매우 많을 것이다.
폭력적에 대해서 얘기하다 보니까 이야기가 살짝 산으로 가는 것 같은데
모든 부대가 그런것도 아니고 운이 좋다면 좋은 선임도 충분히 잘 만날 수 있을 것
암튼 우리 부대에서도 그 선임들 병장놈들이라 칭하겠다. 그놈들이 당시 부대의 실세였었고
부대 인원이 좀 많아졌을 때 부대 막사가 아닌 조금 떨어진 곳에 옜날 막사에 거주키를 원했고
평소엔 크게 겉으로 사고가 드러나지 않았기에 그놈들은 연병장을 지나 200미터정도 더 떨어진 아주 외각에 있는
내무실에 간부 없이 거주하게 되었다.
한 며칠은 조용하더니 간부의 터치가 없는 곳이다 보니 밤 늦게 티비를 보거나 짱박히거나 하는 사태가 빈번해졌고
우리 부대에는 상근들이 드나들었었다. 주간 상근 야간 상근 두팀으로 드나들었는데
야간상근에게 술을 사오라 명했고 힘없는 상근들이 술을 사왔고
내무실에서 술먹고 깽판치고 폭력사태까지 발생해 부대가 한번 발칵 뒤집혔음
그 미친놈들이 영장을 가게 됨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아마 말년이어서 휴가 다 잘리고
진짜 쥐죽은 듯이 지내다 전역을 한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론 성격 쎈 선임들도 그 사건을 기억하며 부대내에서 폭력이 줄었고 나또한 나의 후임들도 폭력을 더이상 경험하지 않으니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우리부대의 폭력은 사라졌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공감한다.
이 부분은 보상심리도 작용하는것 같다. 나의 이등병에 병장들은 무언가에 되게 예민하고 화가난 상태였다.
나의 상병 병장시절에 우리 부대는 매우 가족같았고 화기애애했다.
폭력도 없어지고 가혹행위도 없어지고 얼차려도 없어지고
부대는 행복했지만 상하명령 관계는 조금씩 거꾸로 흐르긴 했었던 기억이 있다.
후임들은 더이상 선임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 하지 않으니
뭔가.. 빠릿빠릿 하지 않아진 기분
이래서 나때는 라떼는 하나보다.
지금 군대와 비교하고 싶진 않다. 세상은 변했고 나는 더이상 군대에 미련도 없고 내가 왈가왈부할것도 아니니 말이다.
모든순간이 다 좋을 순 없겠지만 상하존중이 이루어지고 조금만 서로에게 배려한다면
젊은 나이에 군대를 가서 불의의 사건에 휘말리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과거의 피해자이며 우리끼리 싸울 필요는 전혀 없으니
젊은친구들은 군대에 가게 된다 하더라도 꼭 버티어 내길 바라
목소리를 계속 내면 된다 옛날 처럼 보복 없어졌다고 들었다.
합당하다고 생각되고 넘어갈 정도는 넘어가주지만 이건 아니고 바꿔야 할것 같다 생각되면
크게 목소리를 내고 사건을 크게 만들어도 된다 생각한다.
그런 순간 하나하나가 앞으로 군대를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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