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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용량부족/취사병이야기

까라면 깠었던 그 시절의 훈련병생활

 

때는 바야흐로 2004년 1월 2일 

정확하게 기억한다 입대 날짜를 잊고 살 수 있지만 나름 2004년도 첫 입소자였기에 까먹기 힘든 날짜다

뭐... 남들처럼 거창하게 논산을 간다던지 한건 아니었다.

내가 갔던 곳은 향토방위 해운대구 신시가지에 있는 신병훈련소 충렬신병교육대

살던곳도 해운대구 머리는 미용사이신 엄마가 깎아줬고 구를 벗어나지 않으니 아버지가 아침에 살짝 데려다준

아주 별것 없던 입소 첫 날이 기억난다.

1월이라 바람은 매우 추웠고 늘 살던 해운대구이지만 낯선 공기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었다.

 

다들 그렇겠지만 여느 훈련소나 들어가서 겁주고 기합 주고 군기 때려잡고 하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그런데 학생때처럼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던 어린 아이들

자유를 만끽했던 잠깐의 대학시절 그리곤 입대 왠만한 남자들이 밟는 노선

그렇게 혈기왕성했던 어린성인들의 집단 갑자기 중압감이 느껴지는 환경에 또다시 이 성인들은 

어린아이가 되어 밥먹을때도 눈치를 보고 화장실도 허락 맡고가고 쉬는것도 통제되어있는 

그런 집단에 소속이 되는게 군대다

 

요즘 군대 요즘 군대 하는데 군대란 전쟁을 위한 집단이고 상하명복이 기본 전제가 되는집단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발생되는 문제들 그 어린 애들을 혈기왕성한 나이에 정체성도 제대로 잡혀있지 않는

어린어른들을 모아다가 상하명복을 시키니 구타가 발생하고 문제가 터지는게 아닌가

하지만 드러나는건 문제점의 일부분일뿐 대부분은 묵과하고 지나가거나 혹은 또 집단마다 분위기가

좋은곳도 제법 있는건 사실이다 아무도 이렇게 좋은 부분에 관심이 없으니 모르는거지 실제로 

친구들이나 선후배끼리나 남자들끼리 모여 군대 얘기를 하면 치를 떠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들 웃으면서 그떄를 회상하고 욕한번 하고 웃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

도를 지나쳐 선을 넘어서 사고가 발생한 몇몇의 끔찍한 사고를 제외하고는.. 나름 지낼만한 곳

두번은 가기 싫은 곳

누군가는 명령을 하고 누군가는 복종을 하고 가 되어야 전쟁이 났을 때 누가 명령을 내리고 누가 복종을 하고가

단련이 되어있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정확힌 모르겠지만 내무부조리를 없애기 위해 같은 계급끼리 생활한다는건 조금 아이러니한 입장이다.

애초에 징집제가 문제인거지

말이 또 새는데.. 

 

어쨋든 나의 첫 군입대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시작 되었다 .

저녁을 먹고 나면 보이는 바깥에는 아파트가 높게 서있었고 옆에 있던 동기는

그때마다 나한테 말했다.

저기 불꺼진 14층 저기가 내방이다 항상 그랬다..

훈련소에선 담배를 필 수 없어서 당시 잠깐 배웠던 담배를 강제로 끊어졌는데 

주변 동기애들이 기관병들이 피던 꽁초를 주워서 피다 걸린걸 본적이 있다.

바보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땐 열악했다 그게 당연한건 아니었는데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그러니까 제목대로 까라면 까는

어떤정도냐면 겨울군번인데 밥을 먹고 나서 식판을 씼어야 하는데

찬물밖에 안나오는건 당연한데

심지어는 세제도 없다. 

비누 군대비누... 그걸로 식판을 닦았다.

기름진 반찬을 먹은 날이면 식판이 온통 기름인데 닦아지질 않는다.

식판은 정해진게 없어서 누구나 대충 씼었고 다음 식사때는...

손이나 이런걸로 덜닦인데를 대충 닦고 먹었던 기억이 있다.

 

나때 아마 6주인가 5주인가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는데 

상근예비역들이 4주 훈련을 받고 집에 가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함께 힘들게 동고동락 한줄 알았는데

그들은 집으로 간다고 하니 뭔일인가 싶었음

나는 그때 상근이 있다는걸 처음 알았음

훈련나가고 있는데 웃으면서 집에가던 그시키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음 ㅠ

 

 

훈련소에 있던 내무실은 옜날 내무실이라 한 40명정도 지냈었던거 같은데

매일 같이 혼자자던 내가 갑자기 모르는 성인남성들이랑 잔다면 어떨까

잠이 안온다 게다가 그와중에

잠잘자는 놈들중에 코골이들이 꼭 있다

일찍 못잔 날은 잠 못잔다고 봐야한다

 

다행인건 훈련소의 핵심인 화생방을 하지 않았다

전 기순가 전전 기순가가 훈련을 하다 사고가 있었나보다 

그래서 화생방은 앞에서 연습만 하고

입장은 하지 않았음

개꿀이었던 순간이었음

 

훈련소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활동 보통 1주차 2주차엔 

잘 놀지 못함 이 논다는 표현은 가본 사람만 알수 있음

보통은 천주교 그러니까 교회에 많이 가는데 

이 곳에 가면 먼저와서 훈련을 받던 선배기수들과 함께 종교활동을 할 수 있는데

아는 사람을 만나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었고 혹시 잘 모르더라도 어짜피 안볼사이기 때문에

자신감있게 물어 보면 되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음

그리고 이미 교회의자와 책상엔 많은 낙서의 흔적들이 있다. 그걸 읽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잘감

그리고 대망의 찬송가 시간 

찬송가가 그렇게 재미있는 노랜지 처음 알았었음 

그땐 그부대에 찬송가를 교회밴드가 와서 연주를 해줘서인지 더 좋았음

때마침 그 밴드부에 대학교 동기형이 있어서 맛난거를 더 얻어먹기도 함

3주차가 되면 애들이 거의 미쳐서 날뛰는데 조교들도 이시간은 왠만하면 터치 안함

끝나고 뭐라하긴 하는데 그렇게 터치안한 기억임

 

누구는 교회가서 몽쉘통통을 먹었니 초코파이를 두개씩 먹었니 하는데 

나는 찬송가부르는 맛들려서 항상 교회를 갔었던 기억이다

 

그 훈련중에 주간행군이 있고 야간행군이 있었는데

주간 행군은 사실 별거 없었던것 같다. 훈련병들이라 약식으로 했던 터고 다행히 겨울이라 

햇볕은 따사했음. 여름군번 뒤진다함 

게다가 훈련소가 해운대구라서 뭐 지나가는 차들 보이고 아파트 보이고 뛰어나가면 탈영인데

아무도 안함 ㅋ

 

야간훈련이 대박이었는데 보통 자대를 배치받고 가서 하면 선임들이 나름의 노하우를 전수해줘서 좀 덜아프게 

덜다치게 걷는게 있다 치면 이건 아무도 아무것도 모르고 걸어제껴 다치는 사람이 많았음

그래도 어디서 또 듣고온놈들이 우유곽 써야 발안아프다 전투화로부터 발을 보호하자 이래서

먹고 남은 우유곽을 양말안쪽으로 넣어 아킬레스를 보호한적이 있음

걸을땐 불편하지만 그 짓을 안한 애들이 전투화에 다친 모습을 보면 잘했다 싶음

 

야간행군이라 도착지점에서 식사를 먹고 쉬는데 추워 뒤짐 

그리고 또 줄세워서 군기 잡고 군가 부르는데 기억 나는 노래가 "전우"

겨레에 늠름한 ~

뭔가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이었음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 부름

나실제 괴에로움 다 잊으시고 

하는데 진짜 찡하고 엄마 보고 싶었음

아마 울었던 애들도 몇몇 봤었음

그러곤 복귀 하는데 조금 힘들긴 했는데

깡으로 했음 

그냥 쟤도 하는데 내가 못하겠냐 라는 마음으로 걸었던거 같음

근데 기분은 약간 등산 빡세게 하는 기분? 이었음

군장에 총까지 신발도 불편하지만 또 하면 하는게 사람인거 같음

 

의외로 훈련들은 재미있었다고 생각함 

제식 훈련같은것도 뭔가 잘하니까 재미있었고 

총검술 같은것도 조교처럼 할려고 관절이 으꺠지도록 연습한적도 있었음

 

집이랑 가깝다 보니 딱히 집이 그립다거나 그렇진 않았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보니 금방 또 적응 해서 잘 지냄

 

용어들이 의외로 한자들이 많이 들어가있어서 어려운 말도 있었음

외국에 살다 온애들은 잘 못알아 들을수도 있었을듯

진짜 사나이에 헨리나 샘이나 그렇게 얼타는게 못알아 들어서 그런것도 있다 생각됨

 

혈기왕성한 남자들끼리 모아놓으니 싸움도 자주 일어남

근데 신기하게 조교한테 안걸리랄고 주먹질은 안하고 어깨빵만으로 싸움

욕하고 애들이 말리면 더 울부짖다 헤어짐

 

필자도 시비가 한두어번 붙었지만

사실 싸우면 조댈것 같아서 싸우진 못함

 

불침번도 서는데 두명씩 한시간 간격으로 섬

실제 자대에서는 한명씩 두시간 간격으로 섰던거 같은데 

아마 그 야간근무를 경험하게 하기 위해 그런거 같음

자다 일어나서 한시간 불침번을 서는게 피곤함

그래도 다행인건 불침번만 선다는거임

 

그리고 남는 시간이나 쉬는 시간엔 정말 할짓이 없어서 수첩에 노래 가사를 적기 시작했음

내가 아는 노래들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길 좋아했어서

하란 공부는 안하고 노래 가사를 다 적었었음 

아무것도 할게 없으니 그런거라도 적으면서 나만의 유흥을 느꼇어야 했었음

지금이야 자대가면 핸드폰도 사용하고 검색도 자유롭겟지만

당시엔 그럴수가 없었기에 오롯이 젊은 뇌의 기억에 의존해서 노래가사를 뽑아 냈었음

내가 기억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내려가서 잊지 않으려 노력했고

노래가사를 적어 가며 노래를 잊지 않으려 했던거 같다.

뭔가 군생활로 둔해질 나의 기억에 대한 보험을 두려 했었던거 같음

 

자대배치를 받는데 몇명은 전방으로도 빠지기도 했고

그리고 많은 사람이 해운대구 부대에 남아있을수 있었음

그리고 부산 어디의 부대

나는 울산의 어디 부대로 자대 배치를 받아서 갔었고

가는 도중 신병대기소에서 2박 3일인가를 지냈었는데

그누구도 터치를 하지 않아서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훈련소 생활에 대한 기억을 마쳐본다.

사실 디테일한게 더 있긴 하지만 재미도 없고 말도 많아질듯하니

이만 줄여보도록 한다.